“이것이 인증의 폐해예요.” 그녀가 말했다. 1시간 넘도록 버스를 타고 도착해 15분 가량 쉼없이 오르막을 올라 다다른 곳. 방정환 묘터 앞이었다. 블랙야크에서 진행하는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 셀카모드로 표지판과 내 모습을 담았다. “근데 묘지가 어디지?” 내가 말했다. 우리는 고개를 들었다. 언덕 위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공원에는 태극기가 가득 걸려있었다. 달리며 지나친 한용운의 묘터 앞에는 그를 기리기 위한 화환과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삼일절이었다. 인증이 아니라 인사였어야 했다. 조금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걷기로 했던 오르막을 달리기 시작했다.
계속 오르다 보니 어느새 내리막이 시작되었다. 한 고개를 넘자 넓은 평지 데크가 나왔다. 뛰기를 멈추고 데크 앞에 서서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쭉 훑었다. 평소에 달리며 보던 광경과는 달랐다. 넓은 평지에 흰색과 회색 빌딩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다. 답답해 보일 수도 있는 풍경이었는데, 이상하게 멋졌다.
용마산 스카이레일워크였다. 야경이 멋진 곳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를 놀라게 한 건 야경이 아니었다. 낮이었으니까. 고개 하나를 넘었는데 산 이름이 달라져 있었다.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니 어느새 용마산이었고 용마봉 정상 표지판이 눈앞에 나타났다.
수많은 계단이 눈앞에 펼쳐졌다. 고개를 돌려 표지판을 읽어보았다. ‘깔딱고개 570개의 계단’. 숨을 고르고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그래, 지금부터 진짜 연습이다.
나는 앞질렀다. 나는 추월자였다. 앞서가던 중년의 남성을 제칠 때까지만해도. 깔딱고개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계단을 씩씩하게 밟아 올라갔다. 하나, 둘. 그러다 숫자 세기를 멈췄다. 분명 500개쯤 된다고 했는데, 이미 다 오른 것 같았다. 고개를 들었다. 나무 데크가 보였다. 하지만 정상의 것은 아니었다.
발을 멈췄다. 숨이 깔딱거리기 시작했다. 한 팔로 무릎을 짚고, 다른 팔을 데크 손잡이에 걸쳤다. 손잡이는 많이 헤져있었다. 그래도 단단했다.
“숨 차요?”
아까 지나쳤던 그 남성이었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네.” 그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지나쳐갔다. 그의 발소리는 나의 숨소리보다 더 작고 차분했다.
숨을 고르며 동행을 기다렸다. 깔딱고개에서의 가쁜 숨이 생각을 멈추게 했다.
용마봉 비석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하고 있었으므로. 비석 옆에는 태극기가 높다랗게 걸려 있었다. 삼일절이어서 좋다, 다시 한번 생각했다.
비석을 둘러싼 바위 언덕을 뒤로하고 다시 내달렸다. 아차산 하산까지 더 가파른 내리막이 기다리고 있었다. 허리와 무릎을 굽히고 바위 위에 발을 올리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순두부집에 다다랐다. 줄을 서서 기다렸다. 자리를 잡고 모두부 하나, 순두부 하나를 시켰다. 순두부는 계란찜처럼 포슬포슬했고, 모두부는 어두운 녹빛이 돌았다. 맛은 평범했다. 하지만 갓 나온 따끈한 온기와 우리의 허기가 모두부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두었다.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켰다. 얕은 탄산의 따끔거림과 동시에 혀 깊숙이에서 달콤함이 번졌다. 묽은 야쿠르트 한 잔을 꿀꺽꿀꺽 삼키는 기분. 이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