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한 손에 스틱, 한 손에 폴라포

장수 트레일런이 2주 남았다. 마지막 훈련답게 15km 코스로 트레일 러닝을 했다. 인접한 두 개의 산을 오르내리는 훈련이었다. 훈련을 시작한 지 3분의 1도 채 되기 전에 숨이 가팔라졌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초반 업힐부터 달리는 바람에 가파르게 높아진 심박수가 잠잠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산 이름의 특징을 미처 신경 쓰지 못한 것이었다.

한국 산 이름에 ‘악’이 들어가면 흔히들 ‘악’ 소리가 난다고 하는데, 수락산의 ‘락’ 역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나중에 조사해보니 수락산은 ‘물(水)이 떨어지는(落) 산(山)’이라는 의미로 다른 한자를 쓴다고 한다. 그러나 등산객들 사이에서는 산세가 험한 ‘악산’의 요건을 갖췄으니 원래 ‘술악산’이었던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한다고. 어쨌든 단단히 각오를 했어야 했다.

산 중턱까지는 모래알로 바닥이 뒤덮여 있어 디디고 오르기 불편한 흙길이거니 했다. 정상에 가까워지니 큰 바위가 쉴 새 없이 나타났다.

수락산 정상 비석 근처, 한쪽에 내동댕이 쳐진 나무 뭉치들과 끈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지게였다. 뒤를 돌아보니 거대한 아이스박스가 있었고, 고개를 들어보니 얼굴이 건강하게 그을린 마른 체격의 중년 아저씨가 서 있었다. 등산객을 상대로 아이스크림, 라면, 음료수 등 간식거리를 파는 아저씨의 지게였다.

매일 이 산을 오르실 거라고 생각하니, 등산과 출근이 동의어인 사람의 삶은 어떠할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등산이 출근인 삶. 그것은 권태일까, 쾌락일까. 산소가 부족해 헐떡이는 오늘의 수락산이 내게 절대 권태일 수 없는데 말이다.

그것은 시시포스의 신화를 몸으로 재현하는 삶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시시포스처럼 무의미하게 같은 바위를 이고 올라가 떨어뜨리지 않는다. 폴라포가 잔뜩 든 아이스박스를 지고 올라가면, 하산할 때는 텅 빈 박스와 두둑한 주머니가 남을 것이다. 이것이 그에게 매일의 쾌락이겠지? 그렇다면 그의 삶에서 권태는 무엇일까. 나로서는 감히 알 수 없는 일이다.

정상에서 먹는 폴라포 맛은 지상의 그것에 비하면 3배 이상 맛있다. 지게 아저씨가 폴라포 가격을 지상의 3배로 받는 것도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일이다.

3년 만에 개방된 기차바위로 가는 길에 두 번이나 경고 표지판을 마주쳤다. “내리막으로 기차바위를 내려갈 생각하지 말라”는 듯이. 두 번씩이나 경고하니 괜히 더 긴장되었다. 그런데 금지가 아니라고 하니 오히려 더 해보고 싶은 청개구리 심보가 생겼다.

막상 밧줄을 쥐고 내려가니 크게 어렵지 않았다. 오래 머무르면 더 무서우니까, 밧줄을 여유 있게 잡고 빠르게 슬라이딩하듯 내려가면 금세다. 다만 밧줄을 잡은 손바닥에는 불이 난다. 공포란 머무는 시간의 길이에 비례하는 것 같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말이 다 일리가 있는 법이다.

이날은 수락산과 불암산 정상을 오르고, 상계역에서 닭한마리로 식후경을 마쳤다. 총 15.02km. 오늘도 운동 메이트 배지와 함께였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이 권태와 쾌락을 오가는 진자 추와 같다고 했다. 나에게 인생은, 한 손에 폴라포, 한 손에 등산 스틱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