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

“언니, 그건 얼굴 작은 사람들 거야. 성인은 대형 써야 해.”

나는 중형을 내려놓고 대형을 집어 들었다. 결제를 하고 나왔다. 약봉지를 들고 사무실까지 걸어가는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스크는 컸다. 왜 중형 말고 대형을 쓰라고 했을까. 얼굴이 커 보였나. 아니면 얼굴이 커진 건가. 예전엔 얼굴 작다는 말도 들었는데. 약봉지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뒷면으로 뒤집었다. 나이가 쓰여 있으니까.

입가에 주름이 생기고, 손등에도 주름이 생긴다. 내가 다섯 살 때 아버지는 사십 살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의 저녁은 점점 밝아졌다. 그에게 밤은, 적당히 밝은 것이었다. 밝은 밤부터 술을 마셨고, 일을 하지 않았다. 나는 오랫동안 그 모습이 싫었다. 아버지가 죽은 뒤로, 엄마와는 더더욱 연락하지 않는다. 연락을 하는 순간, 그녀의 세계에 내가 발을 들이는 것이고, 해석의 세계에 나도 등장인물로 들어가게 된다.

나는 아침을 달린다. 글을 쓴다. 왜 하냐고 물으면, 딱히 할 말이 없다. 설명하려고 하면, 금방 거짓말이 된다. 그냥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새로운 걸 한다기 보단 하던 걸 더 하게 되었다. 새로 심는 것이 아니라, 심은 것이 자라기를 기다리는 시기로 가는 걸까.

옹구가 곁에 누워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자신이 좋아하는 따뜻한 곳에서 좋아하는 사람 곁에서 고개와 팔을 기대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냥 거기 있다. 저게 현존이라는 건가, 하고 잠깐 생각한다.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