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세상과 고요한 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던 때가 있다.
요즘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할 이야기가 없어진 건 아니다.
내 이야기를 할 필요를 못 느낄 뿐이다.

일상이 무척이나 평온한 탓일까.
매일의 순간에 느끼는 감정들이 극적이지 않기 때문일까.
그리고 꽤나 자주,
이런 삶을 사는 게 참 행복하다고 생각해서일까.

내가 느끼는 행복이 글로 담기엔 너무 시시하진 않은지,
내가 느끼는 감정이 자리를 잡고 타이핑하기에
그다지 대수롭진 않은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이 함께 밀려오다보면 어느새
글을 쓰기 위해 모니터 앞에 앉아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침대에 눕고 싶다거나
오늘 채우지 못한 달리기 마일리지를 메꾸는 데
시간을 더 써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일상의 우선순위가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
나의 경우 우선순위를 바꾸는 데 극적 이벤트가 없다는 것이
아, 이렇게 변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내가 사는 곳, 먹는 음식, 함께 하는 사람들과 반려 동물.
대부분의 내 주변의 것들에 대한 내 감정이 변화 없이
그대로 시간의 겹만 쌓아간다.

물론 변하는 것은 있다.
그것이 내가 아니라 내 주변의 무엇인 것 같고
나는 그것의 관찰자에 불과하다는 감정이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더 회색으로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회색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다루는 것도
이야기가 될 수는 있겠지. 잘 관찰한다면.

그러나 점점 더 내가 관찰하는 세상에 대해
말을 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차라리 내가 서사의 주인공일 때가 더 낫다.
내가 느낀 것에 대한 서술은
내가 말하는 것이 곧 답이라고 믿으면 될 테니까.

그런데,
이 과도기를 잘 지나가보고 싶은 마음이다.

내 주변의 사람을, 주변의 사건을
내 시선으로 더 잘 관찰하면,
그리고 섣부른 해석을 지양하되
최대한 선명하게 그것을 그려보려 노력한다면
글을 통해 하고자 하는 것이
단순히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넘어서
누군가의 심상에도 어떤 형태로든 흔적이 남지 않을까.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타인의 신경망에 남아있던 어떤 흔적을
나의 것과 일치시키는 경험을 더 자주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더욱 더 잘 마음 속에 그려질 수 있도록 말이다.

이 이야기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나는 알고 있지만 내 글이 충분히 추상적이고
불분명하다는 걸 알기에.

과거 신문의 한 칼럼에서 본 문장에서는
‘서정의 시대’에서 ‘서사의 시대’로 옮겨간다고 말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것과 비슷하다.

1인칭의 세계에서 3인칭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과도기를 겪고 있는 지금의 나.
3인칭 관찰자 시점이 될지 전지적 작가 시점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자꾸 관찰하자. 관찰하고 메모하자.
그게 첫발이다.

내가 보고 듣는 세상을 가능한 한 핍진하게 담아보고 싶다.

#감정이아니라장면을모으는훈련하기